아니 이게 트라우마가 안남을 수 있나?
오늘 할머니 댁을 방문해서 알았다.
우리 아빠의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소장수를 했던 아빠의 할아버지... 어느 날 폭도가 할아버지 집에 내려와서 소를 다 몰아가버린다. 아빠의 할아버지는 형과 함께 소를 찾으러 중산간에 갔다가, 형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하고 소를 몰아오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형은 먼저 발길을 집쪽으로 돌리고 나서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총소리가 몇발 들렸다고 한다. 나중에 가보니 할아버지가 맨몸으로 사지가 다 잘려있고 몸통은 냇가의 기슭에 대충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ㅠ(내가 할머니 사투리 이해가 서툴러서 완전 정확히 이해한지는 모르겠지만 80-90% 일치할 거다.)
바로 시신을 옮기면 눈길을 끌어서 영영 시신을 못찾게 될까봐 시간이 좀 흐른 후 당시 17살이었던 아빠의 아버지가 가서 아버지 시신을 수습해왔다고 했다. ㅠㅠ아이고.ㅠ 아버지 시신을 수습해와서, 아빠의 할머니에게 아버지 모셔왔다고 제사상 올리라고 하셨다고 했다. ㅠ
너무 슬픈 일이다. 17살이 아버지 시신 수습한 것도 너무 충격적이고 트라우마가 남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끔찍하고 억울한 일을 겪고도 군사정권 하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어디가서 입에 올리지도 못했던 그 충격과 울분과 상처가 어마어마 했을 것 같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어떻게 그 감정과 상처를 해소하여 사셨지?
나는 모르겠다.
아빠가 어떤 집안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한 순간에 억울하게 아버지와 삶의 밑천을 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사셨는지,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아무일도 없이 잊고 살았는지.
잊지 못하지 않았을까. 상처라는 게 분명 깊은데 그걸 치료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면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 만큼 안으로 곪지 않는가. 이런 끔찍한 일을, 그것도 한 두집만 겪은 게 아니라 3만명에 가까운 도민이 죄없이 살상되었는데, 유족들도 어마어마할텐데 오랫동안 없던 일처럼 묻혀있던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내가 어릴 땐 4.3사건이 뭔지 어떤 일인지 전혀 몰랐다. 20살 넘어서야 4.3사건에 대해서 대충 건너건너 알게된 거 같은데....내가 유족인 것은 30살이 훨씬 넘어서야 알게 된 것 같다. 그것도 아빠쪽, 엄마쪽 양쪽의 유족인 것도.
제주 사람들, 특히 촌에 사는 사람들이 외지인들에 대해서 배척하고 경계하는 태도인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아빠네 형제들 중에 성격이 고약한 분들이 있는 것도 이러한 집안의 큰 일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트라우마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을 거 같다. 자식들이나 손자들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었어도 부모, 조부모의 치유받지 않은 상처와 슬픔에 영향을 어느정도 받게 되있으니까. 집안 분위기가 영향을 받으니까.
있을 법하지 않은, 상상조차 안가는 끔찍한 일이다. 전쟁도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민간인이 이렇게 죄없이 죽임을 당하다니. 게다가 그 억울함을 풀지도 어디 가서 이야기도 못하고 더 큰 해가 돌아올까 두려워 쉬쉬해야하는 상황이라니. 우울하고 사회가 싫었을 것 같다.
참....
지금 내가 가늠할 수 없는 큰 일이다.
3만 명이라니. 집단 트라우마에 걸리지 않은 것도 대단하다. 제주인의 생명력이 강한 것일까. 군사정권 그 긴 세월동안 진실을 말하지도 밝히지도 못하고 어떻게 살아온 걸까. 이런 어둡고 나쁜 역사에 대해서 널리 알리고,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자와 관련자를 엄벌하고 희생자들에겐 피해회복을 위한 지원을 해야한다고 본다. 또한 이런 나쁜 역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서 공권력의 횡포와 폭력에 대해서 경계를 하고, 민주주의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 민감도를 더 높여야 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과 상처와는 상대도 안되는 엄청난 사건.
더 생각해보면, 이건 이념의 대립으로 인해서 민간인이 엄청나게 희생된 사건이다. 아빠의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들도 폭도인지, 당시 소수의 폭도를 진압하겠다며 제주도에 진입한 극우 서북청년단과 군경인지 모른다. 도민들은 양쪽의 세력에 희생된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지금 우리나라 내에서 정치세력이 자기네 세력을 결집하려고 의도적으로 편가르기, 갈라치기하는 건 정말 민간인들, 국민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이념 대립(극우니 종북 좌파니 하는 편가르기식 용어도 너무 싫다. 좌파 우파 등등...)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실제 충돌을 겪고 피해를 입는 건 국민들이거든. 너무 싫다.
미국 등 강대국들은 지금 AI대전환에서 살아남고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그 문제, 경제에 집중하는데
우리는 오래된 이념대립 비슷한 정치싸움을 하면서 국민들을 희생시키는 무의미한 싸움을 하는 게 너무 한심하고 답답하다. 화가 난다. 저런 행태가 길어질수록 분노가 일 것 같다.
정치 지도자들이 문제다. 4.3 역시도 역사적 배경이 있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지도층의 잘못된 결정과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근본적 원인일 거다. 자기네 세력의 힘을 위해서 갈라치기하는 이들이 극도로 싫어지는 오늘이다.
책 '작별하지 않는다'는 사실 읽기가 꺼려지던 책이다. 한강 작가의 책이 대체로 어둡고 폭력적(?)이어서 읽기가 거북하다라는 평을 들었어서.... 이 책이 너무 무섭고 끔찍하거나 무거울까봐 선뜻 손이 안 갔다. 근데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고나서, 아버님께서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주문해서 선물해주신 책이라서... 이번에 설 명절에 뵙기 전에 읽어보자 했던 거였다.
생각보다 책이 무겁거나 읽기가 거북하거나 무섭진 않았다. 물론 무거웠지만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덜했다. 오히려 그 수상작 선정이유처럼 소설인데 '시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느낌도 받았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책을 끝까지 읽기가 좀 힘들긴 했다. 뭔가 계속 깜깜하고 무겁고 빛이 안보이는 심해로 내려가는 느낌을 받아서 숨이 막히는 듯한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책 속에서 끝까지 불을 밝힌 '촛불'처럼..... 희망은 미약하더라도 끝까지 함께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제 진실을 말할 수 있고 밝힐 수 있는 시간이 왔으니까,
미처 발굴을 마무리하지 못한 유골들도 찾고, 이 어두운 역사에 대해서 펼쳐놓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거다. 이승만과 미군정의 책임, 좌우의 이념 대립이 매우 극심했던 시대적 배경이 원인이다. 소모적인 이념대립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란다.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이 잔인한 폭력성이 조금이라도 미화되는 것이 싫어서 영화로 만들기를 거부한 경선의 마음이 공감되기도 한다.
독일이 하듯이, 정부 차원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모두에게 까놓고 보여주고 역사의 교훈으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 제대로 사죄하고 피해 회복과 보상을 하고. 아직도 보수정권이 정권을 잡으면 4.3사건 추도식(?)에 대통령이 오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나? 정치적 색깔을 떠나 국가권력이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한 일에 제대로 사죄하거나 기억하려는 노력이 없다니.
화가 나고, 믿기지 않을만큼 충격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믿고 싶다. 갈라치기를 위한 이념 대립이 나쁜 거라는 공동의 의식,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 사죄와 기억, 교육이 이루어 질 거라는 희망을.
+ 한강 작가에게 감사하다. 실력있는 작가가 이렇게 4.3 사건을 조명해주셔서, 세계인들과 우리나라의 일반 국민들에게 이 사건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알고싶게끔 계기를 주신 것 같아서, 그리고 그 4.3 사건이 유족의 입장에서 어떤 경험일지 '사람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주셔서. 누군가에게는 그냥 기사 한 줄, 교과서 한 문장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 끔찍한 일을 겪은 당사자들과 유족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조금이나마 가늠하게끔 해주셨으니까. 유족임에도 무관심하던 나에게도 각성할 기회를 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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